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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편집인 칼럼] 덩치만 커진…정체성의 혼돈

 

 

img.jpg img.jpg 가야 김수로왕릉(위) 김수로왕과 허황후.

 

 

지난 10월 중순, 해외 각처에서 발행되는 한인언론사의 대표들이 서울에 모여 ‘국제포럼’을 열었다. 갓 출범한 재외동포청의 바람직한 역할과 내년 총선을 앞둔 재외선거의 여러 문제점 개선방안, 그리고 한국의 복수국적제도에 대해 학계 전문가들과 해외 현장의 언론인들이 제언을 내고 토론도 가졌다.

포럼의 주제는 서로 달랐지만, 재외동포 관련 사안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의 현안들이고 개선과 보완이 절실한 분야들이다. 포럼에 참여하며 다시한번 느낀 것은 한국의 커진 국력을 실감하는 반면 소프트웨이 측면에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하는 안타까움이었다. 동포청의 제한적이고 미흡한 역량, 비효율적인 재외선거제도, 폐쇄적이고 편협한 복수국적 제도 등 글로벌 선진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면 해결과제가 산적하다는 것이다. 750만에 달하는 해외동포들을 포용하면서 국가적 후견세력으로 활용한다면서도 제도적인 뒷받침과 인식은 여전히 구태와 게걸음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포럼을 마친 후에는 역사 바로 세우기 단체인 ‘대한사랑’의 안내로 뜻깊은 역사문화 탐방을 가졌다. 대한사랑은 한자 표기를 ‘大韓史郞’으로 쓰면서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대한의 역사와 문화, 혼을 지키는 사람들이란 뜻”이라고 설명한다. 아울러 “잃어버린 우리 뿌리역사와 원형문화 정신을 되찾고 한국사의 국통맥을 바로 세워 대한의 밝은 미래를 개척하는 역사문화운동 단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적극 대항하고, 친일사관을 신랄히 비판하면서 한국 역사와 민족의 정체성을 되살리고자 애쓰는 민간단체다. ‘해언사협’과 MOU를 체결한 이유다.

친일적 주류 사학자들의 ‘매국적 역사왜곡’을 고발해 바로잡겠다는 이 단체의 집념과 열정은 “해외동포들에게도 알려야 한다”며 한인 언론인들을 위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기꺼이 사적지 안내를 도맡은 성실성이 말해준다. ‘국수주의자들 아닌가’ 하는 감이 들 정도의 ‘9천년’ 민족사에 달통한 역사 가이드들이 고조선 건국에서 동학혁명까지를 되새기게 했던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가야와 신라 역사의 속살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들과 함께 한 2박3일의 역사문화 기행에서도 가슴에 와닿은 것은 덩치만 커진 한국의 ‘소프트웨어 부실’, 그리고 역사적 정체성의 혼돈상이었다. 쉽게 말해 5천년~9천년 역사를 가진 민족이 광복 80년을 앞두고도 여지껏 민족의 뿌리와 정통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이,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식민지 조선의 역사를 자기들 입맛대로 재편성해 마음 껏 왜곡했다. ‘조선은 식민지가 될 수 밖에 없는 나라’, ‘조선인은 미개해서 억압해도 되는 민족’이라는 세뇌공작의 선봉들이었다.

서기 42년 김수로왕으로부터 창건된 가야는 521년의 역사를 가진 당당한 민족국가였다. 조선의 505년을 능가하는 문화강국이다. 6개 가야의 전성기와 패망 후에 일본에 큰 영향을 미치며 건국의 기초를 닦아 준 어머니 같은 나라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서술하고 있는 이 가야의 역사가 일본인들의 자존심에 거슬리고 만만했는지, 일제의 역사가들은 축소 왜곡하고 지우는데 심혈을 기울였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가짜라며 일본서기만 인용했다. 그들에게 사사받은 한인 사가와 그 제자들은 지금까지 한국 사학계를 주름잡으며 일본적인 시각으로 한국사를 짜깁기해 식민사관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고 있는 실정이란다.

많은 기록과 유물, 사적 등이 입증하는 가락국 건국과 허 황후 불인정, 고녕가야 삭제, 가야 왕들의 계보 부인과 교과서에서 삭제, 일제하 1915년 김해 김씨 족보 발행을 금지시킨 사건 등 왜곡사례가 넘쳐난다. 그리고 ‘임나일본부’가 등장했고, 최근에는 그 영역이 북으로는 조령, 서로는 전라도, 동쪽은 신라 수도 경주 가까이 까지 확장해 각지의 지명도 일본식으로 작명해 붙인 임나 지도가 일본 교과서에 버젓이 실렸다는 것이다.

지난 9월17일 유네스코는 한국의 가야 고분군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했다. 가야 고분군이 등재되면서 한국은 모두 16건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유럽과 중국 등에 비하면 적은 편이고, 반만년 역사를 고려하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역사문화의 부국 반열에 들어섰다고 자부할 만하다.

그런데 가야 고분군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학계는 모두 7개 가야 고분군 중에서 경남 합천군 옥전에 있는 고분군을 ‘임나 일본부’의 ‘다라국’ 것이라고 표기하고, 전북 남원군 유곡리와 두락리에 있는 고분군 역시 임나의 ‘기문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대로 표기해 등재해야 한다고 버텼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주장을 대변한 것으로, “한국 역사학자들이 아닌 일본의 식민사관 사학자들이 할 짓”이라는 게 분통을 터뜨린 대한사랑 사학자의 비판이다.

재야 학자와 단체들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시켰지만, “이른바 동북공정으로 한강 이북은 중국 땅이 될 상황이고, 남쪽은 임나일본부라고 일본이 기득권을 주장하면 대한민국은 사라질 판”이라는 재야 민족사가들의 절절한 외침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출처: https://sisahan.com/10141 [시사 한겨레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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